6월 2일 목요일, 16기〈평화나눔 아카데미〉마지막 강연에서는
한국의 ‘가장 급진적인’ 인문생태잡지《녹색평론》발행인 김종철 선생과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으로’라는 주제로 함께 했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돈’의 실체를 바로 알고,
돈과 시스템의 의존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자는 김종철 선생.
그 열띤 강연 내용을 전합니다.
일본 원전 재앙, ‘문명 전환’의 서막
일본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세 달이 가까워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군사력을 통해 대국의 꿈을 꾼 ‘일본제국’은
1945년 히로시마 대재앙으로 끝났고, 경제력을 통해 대국의 꿈을 꾼 ‘일본주식회사’는
2011년 후쿠시마 대재앙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후쿠시마 사태가 본격적인 ‘문명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미국 경제는 중국과 일본이 막대한 미국 국채를 사들였기에 유지될 수 있었지만,
엄청난 복구 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일본은 이제 여유가 없습니다.
달러 붕괴를 목전에 둔 지금, 앞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전개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복지국가’ 보다 ‘복지사회’ 를
지금 한국 사회의 화두는 ‘복지국가’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욕심이 작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 삶이 불행한 이유는 내 인생과 운명에 대한
결정권이 나에게 없기 때문 아닌가요.
그런데 복지국가가 실현하겠다는 ‘분배적 정의’는,
국가가 세금을 걷어 나눠주는 떡을 그저 받아먹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실상 노예의 행복이고 노예의 평화입니다.
더욱이 복지국가는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데,
석유가 값싸게 제공되었기에 가능했던 성장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저는 복지국가가 아닌 ‘복지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사회는 다르지요. 국가권력에 의한 시스템으로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복지국가와,
자주적인 개개인이 협동과 연대를 통해 만들어내는 복지사회는 명백히 다른 개념입니다.
복지사회는 시스템이 무너져도 살아갈 수 있는, 뿌리가 튼튼한 사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공동체가 모두 붕괴되고 의지할 데 없이
고립된 개인이 되어 국가에 제도적인 보호를 요구하고 있어요.
훌륭한 복지는 제도로써 되는 게 아닙니다.
풍요로운 인간관계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복지입니다.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자유로운 개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이 ‘교환’입니다.
‘시장’과 ‘자본주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해요. 100% 자급할 수 없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시장은 없어서는 안 되는 수단입니다.
시장에서의 교환은 단순한 상행위를 넘어,
내 생을 확충하고 의식을 확장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그 교환의 매개체가 바로 돈입니다.
실제 필요보다 더 많은 생산이 이뤄지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유는 구매력,
즉 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돈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봅시다.
우리나라 전체 통화량 중, 한국은행권 비중은 고작 3‐4% 남짓입니다.
대부분의 돈은, 실제 화폐를 갖고 있지도 않은
민간은행이 상환 서약을 근거로 한 대출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허구적 돈을 ‘신용화폐’라고 합니다. 오늘날 화폐는 거의 전부 대출받은 돈, 즉 빚입니다.
여기에 이자까지 붙게 되죠. 그러면 사람들이 갚아야 할 이자는 어디서 가져올까요?
다른 사람이 가진 돈을 뺏는 수밖에 없어요. 사회 전체적으로 돈이 많아지는 만큼 빚이 많아지고,
사람들은 끝없이 경쟁해야 합니다. 결국 경제성장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노예의 돈에서 자유인의 돈으로
우리는 어떻게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들 스스로 은행에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 돈을 만들어,
우리 자신과 지역사회의 공익을 위해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독일의 대표적인 사회적 은행 'GLS Bank'는
공익적, 윤리적, 친환경적 활동을 위해서만 예금자의 돈을 대출합니다.
최소한의 이익을 위해(Profit), 사람을 위해(People),
지구를 위해(Planet) 쓴다는 '3P 원칙'을 지키고 있죠.
현재 이 은행은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방크 자산의 1/1000 정도까지 된다고 합니다.
기존의 화폐로도 윤리적 사용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죠.
좀 더 급진적인 형태로는 지역화폐가 있습니다.
최근 일본 나고야 근교에서 한 30대 청년이 세계 최초의 쌀본위제 지역화폐를 만들었습니다.
유기농 현미 반 홉에 해당하는 지역화폐를 1만 장 가까이 뿌렸죠.
지역 유기농민들과 협약을 맺고 이 화폐를 수확물과 교환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밭일을 도운 자원봉사자에게는 사례비로 지역화폐를 줬고요.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 종이를 버리지 않고 유통시켰고, 회수율 70%를 달성했습니다.
기존 화폐와 달리 농산물이 뒷받침된 지역화폐는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됐습니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뿌리부터
이런 실험들이 작게나마 성공할 때, 공동체는 살아나고
성숙한 정당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입니다.
저는 복지국가나 복지사회 둘 중 하나를 택하자는 게 아닙니다.
출발을 어디서부터 할 건지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꽃과 열매부터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100년, 200년이 걸려도 뿌리가 중요합니다. ‘어느 천 년에?’라는 말이 있죠.
저는 천 년이 걸리더라도 뿌리부터 튼튼히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희망을 이어주는 것이고,
저도 그 희망의 불씨를 조그맣게나마 살려가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나눔문화 http://www.nanum.com/site/166820
[강연전문]노예의 돈, 자유인의 돈 _ 김종철.pdf
